자가치유 성공사례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뇌경색 혀바닥 마비 현상, 60~70% 호전되다
1단계 23회 차 만에, 여동생의 도움으로 자가치유 성공한 김진웅씨
 
편집부 기사입력 2014/03/27 [10:18] 조회 8041
아래의 글은 신상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모 대학 교수가 친오빠의 뇌경색 후유증을 2달간의 흡선치유로 치유된 사례를 본 편집부 메일로 보내주신 원고 전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렇지만 여동생으로 부터 시술받은 오빠는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어도 좋다는 어려운 승락을 얻게 되어 본지에 개제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흡선도사의 뇌경색 치유 체험담>
▲   뇌경색으로 혀가 마비되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부산의 여동생 집에 거주하며 흡선을 해 온  김진웅  씨 (59, 서울 노량진 거주, 자영업 ).  1 단계 22회차 만에  60~70%의 호전을 보이고 서울로 돌아가 완전한 치유애 매진 중이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중풍으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외가집의 가족력인 뇌혈관질환에 대한 공포심을 늘 갖고 있다. 외할머니에 이어 외삼촌, 셋째이모 그리고 친정어머니까지 그 병으로 돌아가셨다. 작년 연말에 서울에 사는 큰오빠의 전화한통은 외가 쪽 지병이 나의 세대에까지 내려왔다는 신호탄이었다. 

술에 취해서 혀가 꼬부라진 것처럼 발음이 온전치 못한 상태의 오빠전화를 받고 큰 충격과 함께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는 생각과 함께 정신을 잘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빠의 병문안을 가기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던 나는, 큰 오빠가 뇌경색에 걸려 고생했던 어머니를 정성껏 수발해 주었고, 역시 뇌경색에 걸려 16년간 온갖 장애에 시달리는 장인어른을 잘 모셨는데, 오빠 자신에게 이 병이 온 것은 하늘도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 입원한 오빠를 찾아가 보니 발음장애 이외에는 멀쩡한 상태였다.
그러나 오빠의 뇌 촬영 사진을 보니 기가 막혔다. 오른쪽 뇌동맥 전체가 막혀있었고, 왼쪽 뇌 부분도 과거 2번의 가벼운 뇌경색의 후유증으로 인해 죽어서 허옇게 된 부분이 군데군데 보였다. 뿐만 아니라 목의 경동맥에도 칼슘침착으로 인해 막힌 부분들이 여러 군데 보였다. 뇌 사진만으로 보면 연하곤란으로 말도 못하고 밥도 못 드시고 콧줄식사를 했던 친정엄마보다 심한 상태였다.

그 사진을 보니 하늘이 무심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지던트에게 부탁해서 오빠 본인에게 뇌 사진을 보여드리게 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보고 자신의 상태를 가볍게 여기고 빨리 일하러 나가겠다고 고집부리는 오빠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식시켜 드리고 천우신조로 얻은 기회를 살려야하는 절박함을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빠와 올케언니에게 흡선치유법을 말하고 이 방법으로 오빠를 치료해보자고 설득하며 내가 사는 부산으로 오라고 설득했다. 열흘간의 병원 입원기간이 끝나고 부산으로 내려온 오빠를 이현기 선생님의 지도아래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 치료했다. 
▲    부산서 시술을 종료한 후 본지 발행인 이현기 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 흡선치유닷컴

3회 차 시술 때는 오빠의 저 작은 체구에서 어마어마한 고름과 어혈들이 등 전체에서 쏟아져 나오고 비릿한 냄새가 방 전체를 진동했다. 뇌경색으로 오른쪽 뇌동맥이 다 막혀있는 상태라서 어혈이 많이 나오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그 엄청난 어혈들을 보고나니 충격적이었다.

그날 치료에서만 나온 어혈을 다 합치면 밥공기 한 그릇분량은 족히 됨직해보였다. 치료가 끝나고 점심식사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속이 울렁거려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빨리 독소들이 나와 준다면 오빠의 병이 빨리 치료가 될 것이라는 희망도 보이고 이현기 선생은 오빠같은 환자들을 많이 보아왔을텐데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20대 젊은 시절에는 여드름박사였던 큰오빠였지만 60이 다된 나이가 되니 등쪽의 피부가 악건성에 가깝게 건조해졌다. 건조한 상태의 피부에 수없이 나온 수포로 인해 생성된 딱지로 인해 치료회수가 거듭할수록 오빠는 고통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흡선기를 모두 걸고 10-20여분 지나면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 신음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과 함께 오빠가 이 정도는 참아야지 하는 생각이 교차했다. 하지만 오빠의 고통을 내가 직접적으로 알 수가 없고 빨리 오빠의 병을 낫게 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에 오빠가 흡선치유법에 질리게 하면 안되기에 욕심을 내려놓으려 애썼다. 치료경험이 많은 이현기선생은 그런 나에게 욕심을 버리라고 재차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에 오빠처럼 중증인 뇌경색환자는 적어도 100여회는 치료를 해야 하는데 살살 치료하다가는 치료회수가 2배내지 3배로 늘어나면 어떻게 하나 라는 불안감과 걱정을 떨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15회의 흡선치료를 받고 나자 오빠는 굳었던 혀가 반쯤 풀렸다고 말했다.

부산에 내려올 때 얼굴빛에서 노란빛이 많이 돌고 기미와 잡티가 많던 오빠의 얼굴이 화사하게 변하고 목부위에 산발적으로 많이 나 있었던 쥐젖들도 점차 줄어드는 신기한 현상도 일어났다. 치료효과를 실감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뇌경색으로 인한 오빠의 발음장애가 등시술 23회차 만에 60~70%나 나아졌다는 것에 놀랐다.

한달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 반쯤 나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나온 어혈량을 고려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오빠 본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치료효과와 함께 완전한 치료효과를 보려면 더욱 치료에 매진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생활의 터전인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흡선을 중단한 오빠는 굳은 혀가 더 많이 풀리기는 했으나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거나 육체적인 피로를 느낄 때면 다시 혀가 꼬이는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흡선치유와 함께 전재영 박사의 맞춤 운동처방도 병행하고 있는데 운동요법의 강도를 높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육체적 피로도가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빠의 굳은 혀가 모두 풀릴 때가 되면 다시금 뇌 MRI를 찍어서 뇌혈관상태의 변화를 볼 것이다.

이번에 오빠의 뇌경색 발병은 세 번째이다.
앞의 두 번은 언어장애와 사지장애가 가볍게 와서 하루 이틀 만에 사라졌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 후유증은 뇌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오빠의 흡선치유의 목적은 첫 번째가 오빠의 네 번째 뇌경색 발병을 막는 것이다. 그것이 무리한 목표라면 네 번째 발병시기를 20년이나 30년 뒤로 되도록 늦추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빠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바꿔야한다. 흡선치유로 신체 내부를 깨끗하게 만든다고 해도 종래의 생활패턴을 바꾸지 않는 한 다시 노폐물은 생기고 쌓이고 또 다시 오빠의 뇌세포를 막을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달 동안 부산에서 머물면서 흡선치유를 하는 오빠는 매일 몇 가지의 나물반찬과 생야채 그리고 견과류와 콩류식품을 주로 하는 식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자연의학에 대한 서적들을 섭렵하면서 병이 발명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많은 것을 움켜쥐고 소유하려는 욕심과 그것이 벽에 부딪힐 때 받는 스트레스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우리의 몸에 준다는 것을 자연의학자들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가고 있다.

또한 앞으로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맑게 하기 위해서 식생활을 어떻게 하고,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키워나가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다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치료를 거듭해야 오빠의 뇌혈관 상태를 회복시켜서 뇌경색 재발을 막는 단계까지 갈 수 있을 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처음에 부산에 내려올 때는 막내 동생의 권유에 따라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치료를 시작한 오빠가 흡선치유의 원리를 머리로 체득하고 거듭되는 치료에서 나타나는 치료효과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태도로 치료에 임하고 있다.

흡선치유로 상당히 원기를 회복한 오빠는 얼마 전부터 흡선치유를 익혀가고 있다. 이론적으로나 임상적으로나 흡선치유에 전념하고 있는 오빠는 머지않아서 ‘흡선 도사’가 될 것 같다. 흡선도사가 되는 길에 들어선 오빠의 목표는 오빠와 같이 뇌경색 가족력을 가지고 있고 현재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는 부인을 치료해 주는 것이다.

요즘 보기 드문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부모님과 처가어른들께 효도했던 오빠는 자신에게 주어진 귀한 치료의 기회를 살려서 본인의 몸은 물론 가족의 몸도 살리고 싶은 희망에 오늘도 열심히 흡선도사의 수행 길에 매진하고 있다. -끝-

기사입력: 2014/03/27 [10:18]  최종편집: ⓒ 흡선치유닷컴
 
만녀 14/03/31 [16:39] 수정 삭제  
  오빠의 병이 빠른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드림 14/03/31 [21:32] 수정 삭제  
  병원에 입원해서 계속 치료했다면 한달만에 그 정도의 치료가 됐을지 ,,?
병원에서 할 수 없는 인체에 쌓인 노폐물을 빼내는 것이 흡선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아ㄸㅣ 14/04/05 [07:51] 수정 삭제  
  매우 감동입니다. 20년의 중풍으로 고생하다가 주님품에 안긴 할머니가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100% 완전 괘유를 기원합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김윤자 한의학 박사, 일천 제자단 입문
'흡선치유법' 한의학적으로 고찰하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