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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선과 자연 1> '몸 안에 자연이 있고 자연 안에 몸이 있다'
<흡선과 자연 1> 흡선치유의 원리는 내 몸이 자연공동체로 되돌아 가는 것
 
서울흡선연구동아리<흡선과 자연> 기사입력 2013/09/09 [18:09] 조회 7864
근대 이전에는 모든 삶이 가족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졌다. 가족이란 단지 부모 자식을 넘는 큰 외연을 가졌었고, 가족을 넘어서는 씨족, 부족, 마을 등의 공동체들이 있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농사든 뭐든 혼자 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토지 등 많은 것이 공유재산이었다는 사실에 기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다는 것 자체가 언제나 타인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이 경우 공동체의 구성원은 단지 ‘사람’들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소나 말 같은 동물들은 물론 토지나 숲 등 생산이나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은 모두 공동체의 일부였다. 가령 아프리카의 누어족에게 소는 인간 못지않은 정도로 사랑을 나누고 삶을 공유하고 있는 가족이었다 (에반스 프리차드, <누어인>, 탐구당). 

모든 개인/개체는 자연공동체이며, 모든 자연공동체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개체입니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라는 대립은 individual에 대한 19세기초의 생물학적 통념에 기대고 있는 허구적인 대립입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개인주의입니다. 모든 개인주의자들은 ‘개인’이라고 확신하는 자신의 몸 자체가 하나의 자연공동체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개인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떤 개인도 다른 사람이나 생물/사물에 기대어 산다는 것을 잊고 삽니다.

우리의 몸이 자연공동체임을 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개인만이 존재한다는 확신 속에서, 습관적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덕분에 혀에는 즐거움을 주지만 몸의 다른 부분에는 악영향을 미치는 음식을 날마다 먹고, ‘나’는 편하지만 몸의 다른 세포들은 고통스럽게 하는 행동을 일상적으로 합니다. 개인의 욕구가 세포들의 공동체의 한도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지극히 개인주의적입니다.

그 결과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 때문에 세포들은 병들어가고 몸의 조직(tissue)들도 병들어가며 기관(organ)들도 본래의 제 기능을 못하게 됩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곧바로 유기체적인 신체의 고통으로 드러나지는 않겠지요. 몸이라는 자연공동체 안에서 어떻게든 풀어가려는 흐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안에서 도저히 견디어 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때, 아픔과 병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왕이 제 맘대로 하다가, 백성들의 공동체를 혼란과 아픔 속으로 떠미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몸의 아픔이나 병은, ‘내’가 좋아서 하는 생활들이 세포들의 자연공동체로선 이제 더 견디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이니 어서 빨리 고쳐달라는 신호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내 몸이라는 자연공동체 각각의 요소들을 배려하면서 자기 자신의 몸에 맞춰 먹는 것과 일상 행위들을 고쳐나가기 시작하면 됩니다. ‘나’의 습관이 거부하고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영향을 받겠지만, 그 순간들을 넘어서지 못하면, ‘내’가 내 몸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꼴이 될 것입니다.

몸이 자연공동체이고 자연공동체가 몸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각각 제 기능을 하면서 이웃한 요소들과 흐름/리듬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때 각각의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동성’이 생겨납니다. 이 공동성의 긴밀함이 몸이라는 자연공동체의 건강성을 결정하지 않을까요? 비로소 내 몸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요소요소 서로 통하여 리듬을 맞추어 호흡하는 것이겠지요. 즉 서로 배려하는 상태가 되겠지요. 그러지 못할 때 고인 물이 썩어가듯 몸에도 독소가 쌓입니다.

▲  혹시라도 인체에 꼭 필요한 혈구나 혈장, 미네랄, 임파액, 영양소등이 빨려나오지는 않을까?   이에대해  창시자는 '아무것도  분충되지 않을 때까지 시술해야 한다' 고 밝힘으로써, 인체에 유익한 물질은 절대로 몸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이다.   
© 흡선과 자연 연구팀
흡선치유법은 인체 내 200만개 이상 존재하는 땀샘의 노폐물 분비기능을 활성화시켜 잉여영양분이나 체내 독소를 제거하여 요소요소의 균형을 잡아주게 함으로써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는 자연요법입니다.

흡선치유의 원리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 내 몸이 자연공동체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창시자가 그의 의술철학에서 강조하는 바는 ‘인간이 태어난 이상 병이 있는 것이 자연 현상이며, 병이 있으니 치료법도 마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 치료의 관점은, 몸은 스스로 치유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흡선은 그 중 한선(汗腺, 땀샘)을 활용하여 체내에 누적된 노폐물을 제거하여 치료 효과를 더욱 높이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부분은 ‘하늘의 기운을 호흡하고 땅의 정기를 받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체내에 노폐물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세포 조직 속에 누적된다. 흡선의 치료적 의미는, 체내에 쌓인 노폐물이 과적되면 순환에 장애를 일으켜 병의 원인이 되므로 노폐물을 적극적으로 흡출시켜 병인을 제거하는 것이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흡선치유를 통하여 치료 효과를 높여나간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러니까 치유와 치료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치유와 치료는 다릅니다. 치유는 자연의 과정이며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공동체적인 힘입니다. 반면 치료는 주로 외과적인 처방입니다. 약물과 수술 등 치료행위는 증상을 감추거나 없애주기는 하지만 병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치유는 치료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치유는 언제나 반드시 ‘내’ 몸 안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증상을 일으킨 근본원인을 따지고 들어야 합니다. 치유는 질병의 원인을 개인적 삶의 감추어진 부분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물론 치료를 통한 신체기능의 회복이 치유를 수반할 수 있지만 치유는 치료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완전히 치유되었음에도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치유와 죽음은 배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료를 통하여 생명을 지키고 연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러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죽음을 신비로운 생명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패트리시아 라이스Patricia Reis는 “치유의 진정한 의미는 한 개인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 죽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치유는 삶을 의미 있고 충만하게 살 수 있는 기회이다”고 말했습니다.

몸은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받지만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삶의 과정에서 어떠한 경험을 했든지 간에 그 경험이 갖는 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감정적/육체적으로 그 경험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진정한 치유가 존재합니다. 몸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를 해독하는 특별한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신만이 그 메시지의 의미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몸의 아픔이나 병은, ‘내’가 좋아서 하는 생활들이 세포들의 자연공동체로선 이제 더 견디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이니 어서 빨리 고쳐달라는 신호입니다.
흡선치유는 그 신호에 답하여, 체내의 독소를 제거함으로써 병인을 제거하는 치료를 합니다. 아울러 내면적 돌아봄을 빼놓을 수 없는 치유 과정으로 중시합니다. 가족시술을 원칙으로 하는 까닭은 환자의 자연치유력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따뜻한 의지의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족의 극진한 사랑과 정성으로 질병을 극복하는 법을 서로 배우며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본래 의미를 되살리는 기회를 만듭니다.  또한 사람마다 살아온 경로만큼 몸의 상태가 다르듯이 한 개 한 개의 흡선기 안에서 땀샘을 통해 나타나는 수포의 수와 색, 크기, 액상의 점도, 노폐물의 종류와 양은 질병의 종류와 진행정도에 따라 독특하면서도 다양합니다.

환자는 어쩌면 부서진 채로 방치 되어있던 삶의 일부를 내 몸을 통해 가장 어두운 밑바닥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드러내보이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가족이 함께 하고 풀어버림으로써, 천지 자연이 순환하듯 삶 또한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는 적극적인 긍정의 관점을 갖게 하는 것, 흡선치유로 몸과 마음을 낫게하는 과정 자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환자의 변화 자체로 순간순간의 기쁨을 주고받으며 몸의 건강과 마음의 성장을 노래하며 따뜻한 관계를 되찾는 것은 병의 고통조차 한층 풍부한 삶의 능력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족적 에너지는 병에 걸린 자신이나 의사를 탓하면서 스스로를 엄혹한법정에 세워 자괴감에 빠질 필요가 없이 ‘내’ 몸의 자연공동체적인 힘과 역량을 그 자체로 음미하면서 지금 이 순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것이 흡선치유의 길을 가는 내 몸의 자연공동체적인 방법입니다.

                                                                                         
                                                             

기사입력: 2013/09/09 [18:09]  최종편집: ⓒ 흡선치유닷컴
 
자비심 13/09/11 [14:11] 수정 삭제  
  몸이 자연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고 병과 통증도 거부가 아닌 수용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ahdtlf 13/09/16 [19:16] 수정 삭제  
  치유는 반드시 내 몸안에서 시작한다----병에 대한 통찰력이 보입니다 독소배출이 최고의 의학이며 최고의 의술인 셈이죠 자연치유력이 막강해지게 하는 것이니까요 물리적인 독소배출법인 수포반응에 의한 부항법이나 생리적 독소배출법 하여튼 자연치유력을 강력하게 하는 것이라면 가장 과학적이고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고 가장 성공적인 치유법 최고의 의술로 봐야 할 것임-내 몸에 원래 내제된 자연 치유력이 다 알아서 하니까 제가 8살때 시골서 나무로 팽이를 만들다 손가락 두개를 낫으로 뼈가 보일만큼 베인적이 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40년전에 먼 약이 있겄어유 기냥 된장바르고 있었드니 낫드라고요 또는 회를 먹다 회가 하도 텡글텡글해서 확 씹었는데 안쪽 볼쌀을 씹어서 너덜너덜 거린적이 있었죠 입안은 침이라는 수분으로 범벅인곳인데 약도 전혀 쓰지않고 다 나았죠 또는 단전에 뜸뜨면 좋다고 배위에서 5분동안 타는 밤알만한 뜸을 떠본적이 있었는데 수저로 수박파듯이 푹파이는 상처가 납디다 약 전혀하지안았는데 기냥 낫드라고요 이거이 자연치유력 내 몸에 내제된 방어기전 원래 내제된100명의 명의가 바로 이 자연치유력 이거면 되는데 먼 약들과 화학치료들과 수술 항암주사 방사선치료들을 맹신하시는지 적당히 이용하셔야 하는데 넘 맹신을 해요 오히려 죽이는지도 모르고-- 현대의학 감기하나 손 못대는 것이 현대의학이지요 약 먹고 병원가면 치료 되는데7일 걸리고 기냥 집에 있으면 일주일 걸린다는 거잖아요 감기는 바이러스라서 이 바이러스를 죽일수 있는 약이나 물질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안는다고 합니다 70도에서는 괴멸시킬수 있는데 먼저 사람이 구워지죠 그럼 이 흡선으로 어케 되냐 네 되죠 간단혀요 이 흡선치유에도 공개되어 있드라구요 분치법으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발에서 목까지 85-110개가지 부항 컵을 걸어서 가스만 빼줘도 감기 우물떡주물떡합니다 하루에 3-5번하면 감기 겁먹고 도망 합니다 자연치유력에 방해요소 이 독소가 가스형태로라도 제거되니 자연치유력이 제일을 하는데 방해꾼이 없으니 지일 그러니까 매일3000개에서3만개가 생기는 암세포와 세균과 병원균 바이러스를 잡아먹고 죽이고 몰아내고 방어하게 되는거지요- 자연치유력이 지일을 제대로 하는 거지요
그래서 내몸안에서 치유가 시작한다는 것일 겁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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