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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 흡선치유 임상 확보하다
포항 이창현씨, 여동생 정신분열증 완치, 전 가족 난치병도 치료 쾌거
 
이현기 발행인 기사입력 2012/07/15 [16:44] 조회 4910
▲  포항에서 자영업을 하고있는 이창현씨.  2009년 11월 13일에 여동생과 함께 흡각요법 임상학회를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사진은 얼마 전 포항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취재에 응하고 있는 이창현씨   © 김정도 기자
 
'정신분열증' 치유 임상 확보하다.

지난 2011년 여름, 기자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포항에 거주하는 이창현이라고 소개하는 47세의 이 남성.
'흡각요법강론'의 저자인 이현기 선생께서 잘 계시냐는 인사와 함께 그동안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야 안부를 묻는 다는 것이었다. 2009년 자신의 여동생이 우울증으로 시작해서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정신분열증으로 까지 심화되어 무척 고통 받고 있었는데, 흡선치유법(그 당시는 '흡각요법' 이었다고 했다)으로 완치되어 잘살고 있어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 기자는 흡선치유로 정신분열증까지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들어 매우 놀랐고 언젠가는 이씨를 꼭 한번 취재해야겠다고 다짐해 왔었다. 그러나 포항과 부산이라는 거리상의 여건과 여러가지의 만만치 않은 일정으로 방문이 미루어져 왔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이씨는 '흡선치유 포항동호회' 결성을 위한 준비모임을 갖겠다고 다시 전화로 통보해 왔다. 드디어 포항을 방문하여 소중한 임상을 확보할 기사 취재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필자는 이현기 저자에게 동행할 것을 권유하였고, 우리는 발로 뛰는 기사를 쓰기 위해 포항을 향했다.  

 
전라북도 전주로 시집간 여동생 정신병원에 갇혀.
취재는 포항 죽도동의 분위기 좋은 넓은 커피숍에서 이루어 졌다.

김정도 기자(이하'김') ;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전화로만 통화하다 이렇게 직접 만나 뵈니 정말 반갑습니다. 우선 여동생 분의 자초지종과 현재 근황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이창현씨(이하'이')  4년 전, 어느날 갑자기 전주시내에 있다는 모 정신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제 여동생을 격리수용하여 입원할려고 하니 친정쪽 가족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지요. 급히 제 친형님과 함께 전주로 가보니 이미 일반 정신병원에 입원된 상태였어요.  병원 측과 사돈댁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제 여동생 이00(39세)는 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정신 분열증세로 악화 되어 큰 병원 정신과 병동에 격리수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근처 oo대학교 종합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상태라고 하더군요. 몇년만에 만나 반갑기 그지없는 친정 오빠들을 만나고서도 헛소리,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여동생을 보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더군요. 남편과 시댁생활에 엄청난 고통을 받아왔음이 직감되더군요. 
가족전체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어요. 
현재 저도 어려운 상황이었고, 시집간 동생을 데려와 잘못되면 사돈댁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여러 가지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이 없었어요. 

김. 그렇다면 아무런 대책이 없었던 상황에서 어떻게 이 치료를 시작하게 되신거죠?  제가 알기에는 그 당시 흡각요법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임상은 저자의 책에도 없었고, 창시자의 책에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만...

이. 예~ 물론 없었지죠...우선 흡선을 찾게된 경위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2009년 7월 처음 사혈요법을 접하고 정혈요법 책을 사서 독학 임상실험 하면서 1급 자격증을 취득 하게되죠.  공부를 하던중 사혈은 치료과정 중 생혈 손실의 부작용등 시술을 받는 사람이 불안하고 피의 분출량 수칙을 지키자면 병의 완성도에 못미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죠. 어혈과 생혈의 비율 체크 를 눈대중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사람을 잡는거나 마찬가지 였죠..그래서 측정기를 구입 하여 실험해 보기도 하였으나 무언가 부족한 한계를 많이 느끼며 다른 요법을 찾던 중에 흡각요법을 접하게 되었고 공부하면서 자가치료 실험 한 지는 2~3개월 정도된 시점이었죠.

그래요. 그 당시는 흡각요법이었지요...
처음에는 여동생을 제 집에 데려와 시술에 들어가면서 형님과 누님의 동의는 있었으나 다들 걱정이 태산 같았었지요. 그 무렵 사실 제 상황도 최악이었어요.  아내는 갑상선암 판정 후 수술을 하였고, 정신병을 앓는 여동생을 데려오자니 별도의 방이 필요한데 이사를 해서 방 한칸을 더 늘여야 가능한 상태였지요.
 
동생을 데리고 와서 먼저 대구에 사시는 누님댁에 일주일 대기시켜놓고 저는 이사를 했어요.  그 후 여동생을 포항으로 데리고 와서 치료준비를 하고 부산의 이현기선생에게 면담요청을 하고 저와 여동생이 함께 이선생 회사를 방문 했던 것입니다.   그 때가 2009년 11월 13일로 여기 제 수첩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첩을 보여주며).


▲ 메모기록을 보며 회상하는 모습  © 김정도 기자
가족들로부터 심지어 미친 짓이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질테니 모른척만 해라, 나에게 다 맡겨라"고 했어요.

생면부지의 저희를 따뜻하고 성의있게 이끌어주신 일천 선생의 태도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한번씩 안부전화를 드리게 된 것이 오늘의 인연으로 까지 이어지는군요. 그때에는 아무도 내 심정을 이해해 주질 않았는데 말입니다.  제 동생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 인터뷰에서는 밝히지 못하지만 일천 선생께는 모든 걸 말해드렸어요. 
 면담을 끝내고 포항 집으로 돌아온 저는 2009년 11월14일부터 2010년 1월 13일까지 31회차 까지 했으니까요. (수첩에 적혀있는 시술 기록을 보여주며)

김. 여동생의 치료과정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 여동생을 데리고 대구에 있는 유명한 정신과 병원을 찾아갔어요. 혹시나 다른 치료방법이 없나해서 였어요.  그런데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정신분열증 약을 하루라도 빼먹으면 증상이 악화되고, 심각한 상황까지 생길 수 있으니 매일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게 현대의학의 한계이구나"라고 생각한 저는 치료를 시작하면서 그 약들을 오히려 끊어버렸어요. 임시적인 완화책밖에 되질 않는 것을 먹이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동생의 몸집은 왜소했고 노폐물의 양은 적었습니다.

특이한 상황이 일어났는데 (수첩의 기록을 보여주며), 1단계 치료를 시작하니 여동생이 그 날 저녁식사로 함께 먹었던 돼지갈비를 다 토하고, 50분 경과뒤 몸살끼를 심하게 느낌는 것이었어요. 명현이 어떤지를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아무튼 대단히 특이한 반응이었지요.

▲ 기자는 그의 수첩기록을 일일이 확인해 보았다. © 김정도 기자
3회차 실시때는 심장부위가 따갑고 아프다고 호소 하였고, 피곤함도 호소 하였어요.  7회차 까지 두통, 메스꺼움, 복통, 설사 4회, 하루종일 두통을 호소 하였습니다.

그런데 8회차 시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동생의 제 목소리가 돌아왔어요. 정신분열증의 주요 증상 중의 하나가 개미 목소리, 억양이 느리고 작은 목소리를 내지요. 깜짝 놀랐습니다. 8회차 시술 후부터는 이런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고 제 목소리로 돌아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31회차 까지 시술을 마친 후, 지금은 시댁인 전주로 돌아가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까지 완치되었어요.(웃음)

김. 아! 정말 놀랍군요. 그런데 이창현님의 집에서 여동생 치료를 하셨다면 가족들의 협조와 희생 그리고 특히 아내의 이해가 많이 필요했을 텐데요?

이. 당연하죠 우리 아내한테 제일 감사하죠.
당시 갑상선 암수술을 한 상태인데 본인의 몸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누이를 위해서 온 정성을 다 했지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조카,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던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대구의 조카 녀석도 시간을 내어 우리가 직장을 나가고 없는 낮시간에 한달간이나 여동생을 지켜주었고, 그 이후 모친께서도 오셔서 봐주셨죠. 나중에는 어머니도 여동생 치료에
동참하여 함께 치료했어요. 동생이 하루, 어머니가 하루 돌아 가면서... (웃음) 갑상선암 수술한 아내도 함께 치료를 도왔어요. (순간 이씨는 감정이 복받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갑상선암 수술후유증에 시달리는 아내를 치유.



김. 지금 갑상선암 수술한 아내의 상태는 어떠한 가요? 

이. (웃음) 갑상선암의 수술 후유증으로 온몸이 붓고 피곤함의 연속이었으나 흡선 시술후 그러한 증세는 한마디로 싹 사라졌죠. 주위 사람들이 암환자가 얼굴이 더 좋아졌다고 난리더군요.  동생 치료 중에 아내도 동시에 시술하였고, 2011년에 22회차 까지 한번 더 시술 했지죠. 지금은 건강하게 보험회사 잘 다니고 있어요.


▲ 암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정신분열증 시누이를 거두어 들인 그녀. 아내가 아니라 천사였다.  ©흡선치유닷컴
 
김. 어머니의 치료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제 어머니 뿐만 아니라 당뇨로 고통받고 있었던 제 형님도 지금 치료중에 있는걸요~.  어머니는 경북 예천에 사시는데 노인성 질환 이셨죠. 평생을 농사일을 해서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켜 주셨어요. 시술시 노인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할 정도로 노폐물 냄새가 심하셨죠. 속치법으로 15회차 하셨고 폐기와 노폐물이 엄청나왔고 컨디션이 아주 좋아지셨지요.

재미있는 일화는 정신병으로 아팠던 그 여동생이 완치된 후 어머니 치료를 함께 해드리기도 했어요.

 
친 형님의 당뇨병 시술에 도전
 
▲ 이창현씨가 치료한 친형의 당뇨병 등시술 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등을 보이고 있는 분이 친형. 그는 동생의 시술로 발저림과 피로감이 없어지자 대단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정도 기자
 
김. 말씀을 들을수록 감동적이고 흥미롭군요... 지금 형님을 치료중이라고 하셨는데 어디가 불편하셔서 시술 하시는지요?

이. 형님(52세)은 당뇨가 이미 오래되고 심한 상태입니다.
현재 안강에 있는 큰 금속공장에 근무하고 있는데 지난 6월3일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총37회 시술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이 7월7일이니까 하루에 두 번 시술한 날도 있었던 셈이지요.

김. 현재까지 형님의 상태나 호전증상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 그 전에는 형수님께서 형을 직접 치료하고 있었는데 그 때는 이미 당뇨합병증으로 신장 기능이 많이 떨어져 35% 정도 유지를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때 제가 본격적으로 형의 치료를 시작했어요.

당뇨병을 앓아 이미 몸무게는 많이 빠진 상태였는데 흡선치료 후 노폐물이 얼마나 많이 빠져나왔는지 2키로그램 정도 더 빠졌어요. 그러나 몸은 한결 가벼 워졌고, 심한 발저림이 사라졌어요. 그러다 보니 형은 이 치료법이 마지막방법이라 생각하고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면 제 형도, 제 처도 모두 올겁니다.  그 때 한번 만나보세요. (웃음) 

김. 그럼, 마지막으로 굳은 짐념과 사명감으로 내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으로써 '흡선치유닷컴'의 독자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 합니다.

이. 통증은 신이 인간에게 준 큰 선물입니다.  만약 통증이 없다면 사람의 몸은 너덜너덜 하게 떨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스스로 자가 치유되는 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오장육부가 그 기능을 생산합니다.  자신의 몸은 자기의 것이지 의사의 것이 아님니다.  저의 소신은 자기 몸에 대해 자기 자신이 알아야 하며 꼭 책을 사서 공부하고 정성을 다해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항상 할수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김. 지금까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내가족의 건강은 내가 지킨다는 소신으로 살아가시는 이창현님을 이렇게 취재를 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신문의 독자들에게도 이창현님의 임상체험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어 봅니다.

 
▲ '흡각요법강론'의 저자 이현기와 함께.  이 책을 통해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김정도 기자
 
취재후기
1시간 가량의 취재 중에 몇 년 동안의 가족 임상체험이 적힌 수첩과 노트를 요모조모 찾아가고 기록들을 꼼꼼히 집어가며 취재에 응해주신 이창현씨.  부산을 향해 내려오는 동안에도 이 분의 소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내내 맴돌았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질병과 싸워 이긴 그의 모습이 한동안 내 가슴 에 깊이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올 상반기 최고의 임상이 될 것 같다. 위대한 인간승리, 이창현씨 내내 건승하십시오.


기사입력: 2012/07/15 [16:44]  최종편집: ⓒ 흡선치유닷컴
 
fdsf 12/12/03 [18:46]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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