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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3기 흡선치유로 완치, 임상 발굴 확보
영상 판독 근거 자료 검증거쳐, 다큐멘타리 영화제작팀과 공동취재
 
이현기 기자 기사입력 2012/07/12 [18:19] 조회 4009
 2012년 6월 28일.
기자는 일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자신을 재일교포 정 모씨라고 밝힌 그는 한국의 절친한 친구를 통해 ‘흡선치유법’을 알게 되었고 관련 서적을 여러 번 탐독한 후, 부산을 방문하여 전수교육까지 받은 50대 남성이라고 하였다. 이후 부산에 숙소를 얻어 기거해가며 6개월간 자가 치료를 행한 결과 간암을 완치했으며, 과학적 근거로서 영상판독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흡선치유닷컴’을 통해 자신의 극병담을 실어주기를 요청했고 절망에 빠진 많은 환우들에게 희망을 실어주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다면서, "죽은 목숨이 살았으니 이 치유법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야 말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사회공헌을 위한 첫 시작인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은 자신이 누구이며 특히 신상에 대한 공개는 말아달라는 조건아래 취재에 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임상 발굴 취재라 할지라도 암 치료 성공담에 있어서만큼은 신중하게 논지를 유지해야 하고, 객관적인 신뢰성 검증을 거친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는 본지(本誌)의 원칙도 무시될 수는 없었다. 
한때나마 자신이 간암 환자였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정씨의 입장을 들어본다.

“사람들은 제 간암을 민간요법으로 나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제가 불치병에 걸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주위 사람일수록 머릿속 계산을 굴리겠지요. 제 회사와의 거래를 다시 고려할 것이며, 장기적인 거래계약은 줄어들거나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은행은 이런 저런 핑계로 금융거래를 줄여나갈 것이고 운전자금을 회수하기도 할 것입니다. 사업상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지(本誌)의 입장은 명백히 다르다.
가족 중 암 환자 한명이 있으면 가정 경제가 망한다고 할 정도로 온갖 과장된 건강식품 광고와 치료법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아니한가, 생명이 꺼져가는 암환자들을 더욱 절망으로 몰아넣는 이 파렴치한 현실에서 ‘흡선치유닷컴’의 독자들에게 만큼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자존심만큼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대한 신상 공개를 해야만 한다는 본지(本誌)의 방침과 정씨의 입장은 정면으로 대치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흡선치유법’을 절대 옹호하는 입장에 놓여있는 본지의 발행인 겸, 기자가 이 기사를 취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용의 신뢰성이 실추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 난제 앞에 기자는 며칠 동안 무척 고민했다.
그러다가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된다. “객관적 기사를 통한 독자의 신뢰성 확보는 철저한 사실적 확인을 기본으로 한다. 정씨가 소지한 근거 자료를 하나하나 직접 내 발로 뛰어 검증하고 확보해 두면 된다. 또한 나 혼자만의 취재가 아니라, 누군가와 공동으로 취재한다면 주관적 논지는 배제될 것이고 독자들은 신뢰성 있게 다가올 것이다.”

기자는 취재에 앞서 정씨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다음과 같은 이쪽의 요구조건을 내세웠다.

1) 정씨가 소지하고 있는 근거문서와 간암 판정 촬영 기록이 담긴 CD사본을
   본지(本誌)에 기증해 줄 것과,

2)기자가 지정하는 한국의 방사선과 병원 전문의에게 다음날 함께 가서 이
   문서를 보여 주어 검증을 받자고 제의했고,

3) 그리고는 본 기자의 입회하에 초음파와 CT촬영을 위 병원에서 다시 
   해보자고 제의 했고,

4) 또한 정씨에게 즉시 웃옷을 벗게 하고, 흡선치유 자국을 면밀히 확인하였
   다. 


정씨의 등과 배에 나타난 치료흔적을 본 기자는 깜짝 놀랐다.
흡선치유법의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기자조차도, 그가 처절하게 자가 치료에 임했던 흔적을 보자 그 놀라움은 이내 숙연함으로 바뀌었다. 
 
"살점 하나하나를 회칼로 포를 뜬 듯한 저 흔적"
“죽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결코 저런 상흔이 남을 수는 없으리라”
 사진을 찍어두자는 기자의 요청에 대해 정씨는 가족과 지인들이 자신의 몸임을 알아차리게 되므로 사진은 찍어두되 자신이 수락할 때까지 대중매체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사라진 종양! 믿기지 않는 결과에 놀라.

다음날, 우리는 기자가 지정하는 부산의 모 방사선과 전문의를 찾아갔고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씨 간부위에 초음파검사를 시행했다. 심장이 멎어버릴 정도의 숨막히는 긴장감과 초조한 30여분이 지나갔다.  드디어 정씨를 담당한 주치의의 소견, “일본 자료에서 밝힌 바와는 달리 간부위가 아주 깨끗합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떤 치료를 했는지 몹시 궁금하군요.” 온몸의 치료흔적을 보고서도 몇 번이고 물어보는 주치의는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종양은 흔적만 보일 뿐 더 이상 보이질 않습니다”라고 최종 소견을 밝혔다. 재차 확인을 위해 곧이어 CT촬영을 하였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씨와 기자는 이번에는 게이오 대학병원에서 간암으로 판정한 자료가 담긴 CD를 전문의에게 건네 주면서 지금의 것과 대조 확인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조 판독 결과 주치의는 “있.었.던. 종.양.이. 이.제.는. 없.어.졌.다.”고 분명히 밝혔다. 기자는 이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판독소견서’를 달라고 했다. 이때가 2012년 6월 18일 오후 4시 15분.


영화감독 박현미와 공동취재하다.
믿기 어려운 기적 앞에 기자는 판단력을 잃었고 정씨와는 서로가 잠시 언어를 상실한 듯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얼마 동안 일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정신을 수습하자 영화제작자 박현미 감독이 생각났다.
민중의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사비(私費)를 털어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민중의술 영화제작 활동에 전념하는 진정한 예술인이다. 

한 통의 전화로도 족했다. 

흡선치유법으로 간암환자가 완치되었다는 개략적인 내용을 설명하자, 당장이라도 부산으로 갈테니 (강원도에 살던가?)정씨의 일본출국을 막고 기다리라며 기자와의 공동취재 제의를 쾌히 수락해 주는 것이었다. 기자는 박감독의 예술혼을 이 순간에 또 읽는다. 고마운 사람...

“밤바다의 야경이 바라다 보이는 부산 해운대의 한 오피스텔에서 우리는 이 소중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녹음기와 컴퓨터 상태를 점검하고, 박 감독은 촬영 조감독을 대동하여 촬영위치와 마이크 점검 등 만반의 취재 준비를 마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간에서 3cm크기의 악성종양 발견
그는 올해 한국나이 52세로서 일본 오사카와 한국을 드나들며 무역업을 20년 째 경영해 오고 있다. 사업상 피할 수 없는 잦은 과음과 과로 생활을 수 년 동안 지속해 오다가 작년 10월 경,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새벽 2시를 넘기는 시각까지 계속되는 술자리 도중, 갑자기 오른쪽 하복부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쓰러지게 된다. 간의 경변이다.

의식을 잃은 그는 구급차에 실려가 응급조치를 받게 된다.
다음 날 일본 게이오 대학병원에 입원, 통근 진료 2개월에 걸친 각종 검진과 진단의 결과 다음과 같은 판정을 받았다. 

 녹취록에서 발췌한 정씨의 표현이다.
“의사는 제 간의 앞쪽(오른쪽) 부위에 3cm의 악성종양이 자라고 있음을 밝혀냈어요. 통설적으로 암세포의 크기가 1년에 1cm씩 자라게 되니 이미 3기가 지난 상태인 셈이지요. 결국 주치의는 담관세포암(일본에서는 담관암을 ‘膽管細胞癌’이라고 표현)으로 판정하고, 급속한 전이를 막기 위해 간의 절반을 도려내는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는 소견서를 작성한 후, 제게 이것을 옆 건물 병동에 있는 ‘조직검사 전문의’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소견서 밑에는 주치의의 글씨로 『膽管細胞癌』(담관세포암)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자는 여러 문서사본과 초음파, CT동영상이 담긴 CD를 달라고 했고 정씨는 미리 준비한 듯 기자에게 건넸다.)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판정을 받은 정씨는 소견서가 담긴 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든 채, 병원 밖으로 나와 옆 병동으로 가지 않고 발길을 집으로 향해 버린다. 아래는 당시의 게이오 대학병원 CT복부검사 결과서와 소견서, 그리고 흡선치유 이후, 한국의 방사선과 전문병원에서 발급한 판독 소견서 사본이다.

▲ CT 복부 검사 결과서.  정씨는 간암 악성종양이 3cm 크기가 자라고 있다고 했다.      © 이현기 기자
▲  정씨의 일본 대학병원 주치의가 조직검사 전문의에게 보낸 의뢰서                     © 이현기 기자

▲   간암의 악성종양이 사라진 부위에는 간경화 현상만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 이현기 기자
 
취재 열기는 장장 4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정씨도,우리도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서울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어선희 여사 (강봉천 창시자의 부인)는 "할아버지가 그렇게도 소원했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졌군요.  살아계셔서 이소식을 들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실 일인데..." 눈시울을 적시셨다. 우리 취재진 일행은 오늘의 이 기록이 언젠가는 정씨의 결심으로 인해 모두에게 공개될 날을 희망하면서 녹취하며 기록하고 촬영에 몰입했다.

박 감독의 다큐멘타리가 완성될 즈음에는 정씨도 수락하리라.
그렇다, 언젠가는 후일을 증명하여 역사로서 말하리라!
이 힘없고 가난한 민중의술이 인공의학에 맞서
진정한 자연의학으로 인정받는 그 날을 위해 파이팅~ 
기사입력: 2012/07/12 [18:19]  최종편집: ⓒ 흡선치유닷컴
 
징검다리 12/08/01 [14:45] 수정 삭제  
  흡선치료로 간암3기 완괘하심을 축하드려요.

민간치료인 흡선요법의 우수성을
다시금 실감케 하네요.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렸음하는 바램입니다.
.
고추잠자리 12/08/08 [17:17] 수정 삭제  
  7월달에 형님의 암으로 인해 부산을 찾아 흡선치유 시술방법에 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형님의 시술에 대하여는 아직 장담할 단계는 아니지만 희망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으며 반드시 완치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평소 전 고혈압(5년), 당뇨(3년), 지방간(중증), 고지혈증 등등의 성인병으로 약을 달고 살고 있었고 만성피로와 음주후 숙취 등으로 고생이 무지 많았고 특히 당뇨로 인해 삶의 의지와 희망을 상실해 가고 있었습니다.

2012년 7월 15일경 흡선기를 구입해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12번을 시술했습니다.

저의 당뇨병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시던 큰형님께서 "혈당을 체크해 봐라." 라고 권유를 하셔서 시술 6일째 되던때부터 혈당을 간간히 체크해보고 있는데

공복혈당(정상 100 미만)이 83, 93, 67 등으로 몇일째 계속 정상으로 측정되고 있습니다.

또한, 식후 2시간 후의 혈당(정상 140미만) 도 113,145 등으로 정상치 혈당이 체크되고 있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혹시나 싶어서 혈당강하제를 처음에는 식후 복용했었는데 수일전부터는 아예 당뇨약을 먹지않습니다.

이런한 기쁜일들이 저에게 다가온 것은 부처님 인연이 아닌가...? 하며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혈압이나 당뇨가 완치가 어려워 치료가 아닌 현상유지를 하기위해 혈당관리를 하고 운동을 권하고 있는데 이렇게 흡선치유 몇번으로 성인병이 치료하게 되었으니 주변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향후 저에게 일어나는 변화에 대하여 자주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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