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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술 50년, 광주 명의(名醫) 이충남 선생
{특별인터뷰②} 흡선치유법으로 남은 인생 병자구원의 새 기회 삼을 것
 
편집부 기사입력 2012/06/14 [21:21] 조회 12463
▲ 이충남(72) 선생    ©흡선치유닷컴
 
본지(本紙)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충남원』이라는 한약방을 50년 째 운영하고 있는 이충남(72) 선생을 특별 인터뷰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한약업사이자 침술사 자격을 가진 분들 중의 한사람이다. 해방 후 한약업과 침술로 승부를 걸어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충남.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은 그가 이시대의 진정한 명의(名醫)라고 말한다. 기자는 그와의 3번째 만남을 가지면서 그런 화려한 이력을 지닌 그가 최근에 와서 흡선치유법의 매력에 푹 빠진 이유를 집중 취재하고 싶었다.
 
한약업과 침술을 후진들에게 물려 줄 때가 되었다고 판단, 남은 인생을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살아가던 그가 우연히 흡선치유법을 접하고나서는 "드디어 인생항로를 확 바꾸었다" 고 선언했다. 
 
남은 인생을 흡선치유와 접목시켜 병자 구원에 앞장서겠다는 그, 이충남을 만나보았다.

1. 어떤 경위로 몇 살 때 침술을 배우시게 되었으며, 침술자격을 획득한 지가 얼마나 되셨는지. 그리고 그 당시 배우실때의 사회적 배경은 어떠한지를 알고 싶습니다.
1963년 1월 개업을 하고 3~4년 정도 경과할 무렵에는 많은 환자들이 찾아 들었고 인기가 꽤 있었을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제 첫째 딸(당시 3살) 애가 병원에서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받은 후 그날 밤새 고열이 나면서 아침에 이르러 하반신이힘없이 축 늘어지며 마비증상이 왔습니다. 결론은 의료사고였지요!  온 식구의 심정을 어찌 글로써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 몇년간은 악몽이었지요. 

그무렵 환자들을 상대하면서 한약업은 침술을 겸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하던 터라, 소아마비가 된 자식의 재활치료 겸 이 기회에 침술도 배워 익혀야 겠다는 생각으로 1967년 상경하여 서울 청파동 소재 동양침술학원(원장; 김창겸)에 등록하고, 침술의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침술의 효력으로 제 딸애는 놀라운 효과를 보던 차, 합병증으로 인하여 운명을 달리하였습니다. 
 
그때의 사회적 배경은 의료인(의사)이 부족한 상태였으며 그나마 모든 의사들이도시로 몰리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무의촌이 많았고 국민의 의료혜택이 전무하여 정부시책으로 해방 후 처음으로 한약업사시험을 치르고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때는 외과적 수술이외에는 국민들이 한약업사에게 한약과 침술을 의뢰하였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유일한 한의대격인 동양의학대학을 경희대에서 인수 했었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한약업사들이 한약을 조제하고 침술로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서 정부나 어떤 단체에서도 법적시비도 없었고 사회적여론도 당연시했으므로 내 개인적으로는 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며 침술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에 내생애 요순시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애가 태어나서 소아마비를 앓고 세상을 떠난 과정이 나에게 침술을 익힐 수 있는 계기를 만들오 준 것 같습니다.


2. 제자분 들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광주지역에서는 선생님을 모르는 분이 없을 정도로 침을 잘 놓는 명의로 알려져 있더군요. 그 동안 “아! 바로 이것이다” 라면서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침 치료의 놀라운 경지를 경험하신 것이 있으시면 알려주십시오.
호남지방에서 제일 크고 명성있는 종합병원에서 중풍병으로 입원했던 완도 금당도라는 곳의 송○○라는 환자 보호자가 제게 말하기를, 병원으로부터 “ 집에가서 죽음을 준비하는게 좋겠다” 는 말과 함께 퇴원수속을 하라고 했다더군요. 이제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으니 기왕 집으로 가서 죽을 것이라면, 광주에서 침 잘 놓는 곳이 있다니 원이라도 없게 침이라도 한번 맞히자는 가족들의 합의로 저의 의원인 “충남원”에 가족들이 환자를 들것에 싣고 왔습니다.  솔직히 죽어갈 사람 숨만 쉬고 있는 사람을 선뜻 침을 놓을 수 없어 주저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의 소원이며, 이미 죽음 선고를 받고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니 죽어도 상관치 않겠으니 침 한방만 놓아 달라”는 애원(?)조의 사정에 침을 놓기로 나는 작정했습니다.

나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능력을 믿고 구하오니 살려달라고....
비록 죽을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는 꼭 살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침을 자입(刺入)시켰고 긴장을 풀며 조용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팔이 같은 놈! 병을 나아야 명의지!” 네가 뭐라고 침구멍도 모르는 놈이. 침을 들고 덤벙대는 거냐!

나 자신이 무능하고 초라하고 비굴하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1시간이 넘었을까?
깊은 숨소리와 함께 눈이 뜨이는지 깜빡거리고 손발이 움직이고 몸이 떨리며 목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알듯 말듯 한 소리가...!!  누군가 “아 살았다!” 환희! 기쁨! 가족은 물론 치료하러 오신 모든 환자들... 웃음소리 울음소리 박수소리...

 저는 이날 이 1시간 남짓한 이 사건으로 내 작업과 내 생활에 활력과 변화를 가져왔고 나에게 돌아온 행운은 침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날부터 침에 대한 강한신뢰와 더불어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 이충남 선생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내 건 한의원 『충남원』흡선치유학회 광주동호회라는 간판이 눈에 뜨인다 .  © 흡선치유닷컴

 3. 50년을 한결 같이 환우들에게 침술을 구사해 오셨다면 수없이 많은 환자분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있을 것인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두 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사례1) 아이를 잃어버렸던 사건
우리 업소는 정신질환 환자들이 꽤 많이 왔습니다.
소문이 그런 병을 잘 고친다는 말이 전해져 서지요.
어느 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처녀(23세)가 부모와 함께 왔는데 침을 놓고 다른 환자를 보는 시간에 침을 꽂아둔 처녀환자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지요!

 그때가 오전 10시경 이었는데 시간은 지나도 어느 곳으로 갔는지 조차 몰라 우왕자왕 하며 이곳저곳 사람을 풀어 찾았으나 행방이 묘연했고 사건이 중대한 만큼 오직 환자를 찾는데 집중하고 있을 때 우리애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들려 달려가 보지 3살 된 어린애(우리 둘째 애)가 없어진 것입니다.

누군가가 “어떤 처녀가 애를 업고 저쪽으로 가더라” 고 전해줘서 그 처녀가 애를 업고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후 5시경 7Km 떨어진 강가에서 찾았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어린애는 죽기 일보 직전이고 처녀 환자는 침을 꽂은 채로 (몇 개는 떨어져 있고) 돌아다닌 것입니다. 십년감수 한 사건이지만 나에게는 많은 교훈을 얻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례2) 침을 놓다가 죽을 뻔 한 사건
25세 청년(정신질환) 환자가 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왔습니다.
묻는 말에 고분고분 했고 행동도 조용해서 음성적 정신질환자로 간주하고 긴장을 풀고 자리에 눕혀 조용히 침을 놓는 순간 환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 얼굴을 향해 주먹 등이 날아왔습니다. 순간 번갯불이 번쩍이고, 정신이 아찔했으며 코에서 피가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코피가 아닌 코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던 것이 기억이 새롭습니다.


4. 흡선치유는 어떻게 접하시게 되었는지요? 제가 알기로는 무작정 제자 한분과 광주에서 부산으로 차를 몰아 들이닥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미 그 당시에 흡선치유를 경험하신 이후 였습니까?

어느 날 부항을 뜨면서 수포가 발생하여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보는 수포였으니까요. 뭔가 큰일이 난 것처럼 생각이 들었지만, 곧 이것은 땀구멍으로부터 배출되는 필요 없는 노폐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대해 의학적 상식있는 분들과 토론을 해 봤지만 실체에 대한 정확한 접근은 하지 못 한 게 사실입니다.

시간을 많이 줘볼까? 부항기에 압력을 더 줘볼까?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을 즈음에 평소 나이 많은 나를 멘토로 알고 있는 분이 흡선요법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고 나름대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서 서울과 부산으로 전화를 하게 되었으며, 부산 이현기 선생님와 연락이 되어 그동안 부항으로 발생한 수포에 얽힌 답답한 궁금증을 이현기 선생을 만나보면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열일 제쳐놓고 부산으로 출발했었습니다.

 
5. 침술은 경혈치료를 중시하며 혈맥을 잡아 치료를 합니다. 그런데 흡선치료는 전신 부항을 의미하고 40분~1시간씩 치료하는 요법인데 완전히 상반된 의술이지 않습니까?  이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환자 그리고 가족의 입장에서 고통 없는 평안한 치료와 빠른 치료 그리고 돈이 적게 드는 치료를 모두가 원하는 바 일 것입니다. 상반된 의술이라는 논란에 앞서 어느 누구든지 의료인의 입장에서는 아픈 이에게 고통에서 무통으로, 질병으로부터 무병으로 건강을 찾아주기 위한 一念(일념)으로 환자를 대할 것입니다. 

솔직히 현대의학이나 동양의학이나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이분적 잣대로 보는 것은 타당치가 않습니다.  경혈에 대해서 말하자면 경혈은 점! 경락은 그것을 잇는 선입니다. (경부선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철로길이며 이 기차 길이 경략이라고 한다면 철로 길 위에 멈춰서는 곳곳의 역이 경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혈자리는 오장육부의 내장기능에서 병변이 피부(몸거죽)에 나타난 자리이며 침을 놓거나 뜸을 뜨기에 적당한 자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경혈은 피부에 분포해 있는 “교감신경이 흥분된 자리” 라고도 합니다. 침과 뜸은 교감신경이 조정(안정)되면 저절로 오장육부의 내장기능의 병변이 안정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경혈자리를 찾아 침술을 실행하며 놀랄만큼 수많은 환우들에게 기쁨을 주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경혈학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흡선치유 법에 대한 체험을 통해서 분명한 사실은 인체에 노폐물이 존재하며 그로인해 병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 노폐물을 제거하고 여과하지 않으면 사람에 따라 작은 병이나 큰 병을 얻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흡선치유법과 경혈학은 이론과 치유과정은 다르지만 인생의 최대 소망인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아야 한다는 목적이 같다는데 있습니다. 흡선치유 법은 가정에서의 치유, 고통 없는 치유, 돈 안드는 치유, 확실한 증거를 보이는 치유 등은 어떤 치유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월등한 치유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자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진료소인 『충남원』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충남 선생 
                                                                                                                    ©흡선치유닷컴

 6. 선생께서는 침술처럼 경혈자리 치료점에만 흡선치료를 하여 노폐물을 빨아내기만 하면 충분히 치료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요?
일찍이 사혈침을 환부에 쫏아 그곳에 부항을 붙이고 어혈을 뽑아낸다는 시술법이 과연 타당할까? 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습니다.  전신을 돌고 도는 10만Km의 혈관을 통해 순환하는 피를 어혈을 뺀다는 구실로 사혈을 시켜 피를 뽑을 때, 어찌 노폐물만 나오겠는가! 하는 내 나름대로의 주장이 확고했습니다.  순수한 몸에서 생혈을 뽑아낸다는 주장에 나는 반론을 제기하고, 그 순간부터 사혈+부항이라는 시술법을 당장 그만둔 지가 20여년이 흘렀습니다. 경혈은 사혈을 하라는 자리가 아닙니다.
 
7. 경혈자리를 무시하고 온몸에 흡선기를 부착하는 이 흡선치료 법이 과잉치료라고 생각하시지는 않는가요? 보기에 따라서는 좀 무식한 치료법이고 살벌한 느낌도 든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어떤 이들은 비과학적이다. 무식한 치료법이다. 과잉치료법 이다. 너무 살벌하다는 말 자체가 나로서는 무의미하고 탓할 게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흡선치유를 직접 체험을 해 보았던 사람들입니까?

내 자신 내 몸을 직접 체험의 대상으로 삼았었고 가족과 친인척 가운데 중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을 흡선치유의 사실에 입각해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은 후 실험적 체험을 통해 보았을 때, 1단계 속치법(등짝 전체) 만으로도 고혈압, 당뇨, 부인과적 병증, 만성 소화기병, 디스크, 우울증, 비만, 얼굴 등 피부톤 개선 효과 등에 대해 스스로가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순간 경이로움과 신비스러움에 흡선에 대한 매니아가 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실증을 들어 하나하나 증거를 들어 증명하는데,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8. 선생께서는 오십년을 한결같이 침술인생을 살아오셨고, 지금의 나이가 72세 이십니다. 혈자리 치료를 부정하는 흡선치유법은 선생님의 의술과 정반대의 입장입니다. 이를 수용하고 받아들이시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과거에 연연하면 후회가 따르고 오늘을 두려워하면 큰 우물을 팔 수가 없으며, 내일을 소망한 사람은 미래지향적 삶을 살 수가 있다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으며 남들은 편히 쉬면서 신나게 놀러나 다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일의 소망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할 일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그래서 내 생애 남아있는 에너지를 다 쏟아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평생 해 왔던 오직 한길에서 2% 부족했던 아쉬움을 흡선으로 접목시켜 건강을 잃고 돈 없는 사람에게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자연요법인 흡선요법을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9. 흡선치유를 얼마나 경험 하셨는지요?

어느 날 나는 부항시술을 하는 도중에 수포발생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부작용은 아닌가! 그 후 반복해서 크고 작은 수포를 관찰하고 나름대로 연구하면서 이 수포는 노폐물과 독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모든 의문점을 풀기 위해 나 자신과 가족과 가까운 친인척들에게 설명을 통해 이해를 구하고 부항을 사용하여 실험적 체험을 통해 뭔가 하나씩 터득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치유가 되어가는 것을 본인 스스로가 체험적 효과를 입증 할 때 큰 감동을 받은바 있습니다.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가! 인터넷을 검색해 보던 중 부산 흡선학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방문 후 흡선에 대한 흥미를 느꼈고 일천 이현기 회장님을 광주로 초청하여 “흡선치유 이론과 실제”에 대한 강연을 하게 했는데, 그 이론적 배경의 합리성을 보고 흡선치유요법에 대해 더 큰 애정으로 바뀌어졌습니다.
10. 『정반대 의학』의 저자 이현기씨를 광주로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했다고 하셨는데... 그 당시 선생께서도 자리를 가득 매운 청중들에게 말씀하셨던 내용을 기억하시는지요?  강연에 앞서 청중들에게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동양의학에 대한 끈기와 열정으로 50년이라는 세월을 약을 짓고 침을 놓으며 보냈습니다. 의료인 모두의 목적은 인간의 삶에 보건(건강) 문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약과 침으로 많은 세월을 보냈습니다만 세월이 흐를수록 치료에 있어서 2% 부족이라는 안타깝고 회의적인 생각과 나이도 먹은 만큼 직업 자체를 그만 접기로 생각하던 차에 흡선치유라는 경의롭고 신비로우며 창의적인 의술을 알게되었습니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알고 숙지하여 건강한 몸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오늘 자연의학자 일천 이현기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이 강연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과 가족에 대한 건강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라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11. 선생께서는 경제적으로 아쉬울 게 없으신 분 이신데다, 연세도 많으신데 이를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흡선치유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유가 무엇이신지요?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바탕에 “먹는 문제”로 차별하지 않는 나눔과 공생의 정신이 있습니다.  내 남은 생애 내 힘이 미치는 날까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입혀주며 이웃을 위해 봉사 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50여 년을 국민건강을 위해 내 인생을 바쳤다면 늦게나마 터득한 흡선치유의 장점을 토대로 남은 인생 어렵고 힘들게 사는 아픈 이들에게 널리 알려 병으로부터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건강한 몸으로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12. 사진촬영이 작가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십시오.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강이며 산이며 바다로 전국을 돌며, 외국의 명소를 찾아 30여년을 취미삼아 촬영을 다니다 보니 “저 사람 사진에 미쳤어!”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사진 때문에 의료업에 지장을 초래하면서도, 가족과 소통이 막혀 소원해졌어도 나는 30년의 사진인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 동안 사진에 대한 경륜과 테크닉을 인정받아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Professional)이 되었습니다.

사진 활동의 30여년의 긴 여정은 내 인생의 역사이며 기록이며 생활이며 일기였습니다.  사진 인생 30년에 어찌 일화가 한둘이겠습니까?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정도로 끝을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   그는 프로 사진사로서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다         © 흡선치유닷컴
 
13.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하실 말씀은?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하는 수천년의 세월 속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강의 일익을 담당했던 부항요법이 항상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을 흡선요법의 창시자이신 故 형중 강봉천 선생께서 흡선치유법 이라는 창의적 발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게 하여 저희들에게 물려주셨습니다. 

건강을 잃고 돈이 없어 치료조차 못하는 서민들의 아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토록 소중한 절대적 학술적 가치를 높이는 자연요법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 흡선을 이해하고 애호하는 동호인 모두가 시대적 사명인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정신으로 똘똘 뭉쳐야 합니다. 그래야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흡선치유요법을 지키고 살아남게 하는 길이며 만 천하에 알리는 길일 것입니다.

나는 안타깝게도 흡선치유 창시자인 형중 강봉천 선생님을 생전에 뵙지 못했습니다.
흡선치유학회나 구인회에 대해서도 무슨 조직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모릅니다. 그러나 흡선치유를 긍정적이며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써 한마디 하겠습니다.

창시자이신 강봉천 선생님은 이미 고인이 되셨습니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버팀목이고 울타리 같은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운명을 달리 하셨기 때문에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조직을 이끌어 가야하고 모든 회원, 동호인들은 협조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해야만 일사불란한 조직이 체계와 위계질서 속에서 발전하게 됩니다.
절대로 맥락을 끊어서는 않되는 이 민족의학의 조직의 명맥을 이으실 분이 나오셔서 조직을 이끌어 주시고 흡선치유를 사랑하는 동호인 모두에게 힘을 실어주시기 바랍니다.

기사입력: 2012/06/14 [21:21]  최종편집: ⓒ 흡선치유닷컴
 
귀울음 16/10/20 [11:03] 수정 삭제  
  이명증으로 자연정혈 즉 부황으로 어혈을 제거해고치는 것에서 사암침 수경침 전통칭으로 다해봐도 변함이 없네요 이명증은 50년 침술을 하셨으면 이명증 치료 사례나 방법이 있는지요 서울에선 아주 탕약만을 권하고 침치료도 하는데 별효과가 없어 전전하지요 고견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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