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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화백, 강봉천 선생 초상화 본지 기증
{특별인터뷰①} 고인의 둘째사위, 장인어른 타계 후 본지(本紙)에 기증
 
이현기 기자 기사입력 2012/05/29 [17:23] 조회 5995
▲    김창덕 화백의 인물화  작품   ⓒ 흡선치유닷컴
 
본지(本紙)는 강봉천옹이 생전에 펼치신 민족의술인 흡선치유법(흡각요법)을 시민들에게 알리고자하는 뉴스사이트입니다. 

오늘은 강봉천옹의 인물화를 직접 그리신 김창덕 화백님을 소개합니다.
우선 이 분을 취재하게 된 동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6.25 전쟁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8.15 해방 등 우리 민족사의 격동기를 겪으신 대부분의 우리 어르신들께서는 세끼 밥 먹는 것 조차 해결하기 힘들었던 궁핍하기 그지없던 시절을 보낸 탓에, 자신의 행적과 평생 족적에 대해 사진 두 세장 정도만을 지니고 계신 것이 고작입니다.

민족의학의 큰 획을 그으신 강봉천 선생 역시 타계하신 후 본지(本紙)에서 자료들을 수집해 오고 있습니다만, 제자들이 찍어드린 최근의 사진들이 좀 있을 뿐, 형중(亨中)선생의 시대적 삶을 보여주는 사료(史料)가 별로 없어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김화백께서 이 인물화를 소장하고 계신 것을 우연히 알게된 기자는 내심 좀 놀랐습니다.

제가 이 그림을 처음 보게 된 것은 강 옹의 장남이신 강호경님을 통해서였지요. 어르신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상주이신 이 분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 이 그림을 제게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사실 저는 그 당시 7년 동안 이끌어 오던 ‘흡선치유학회’의 홈페이지를 의료법 문제로 폐간하고 ‘흡선치유닷컴’으로 새로 창간하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던 가슴 아픈 시기였지요. 그러던 중 고민 한 가지가 생겼어요.


새롭게 도약하는 창간에는 강봉천 어르신을 상징할 만한 로고가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간절한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어르신 사진 모두를 검토해도 엄격한 할아버지라는 사실적인 인상만 풍기고...,
 
그래서 제자들과 캐리커쳐(Caricature)를 제작해야 하나, 어쩌나를 고민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지요. 풍자적이거나 우화적인 캐리커쳐로는 강옹의 특유한 캐릭터를 묘사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지었지요.
 
일반 화가들의 단순한 인물 초상화는 더욱 아니고요.
엄격하고 단호하고 강직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그 분의 인물화, 죽음의 문턱을 2차례나 넘나든 총격전을 경험한 전투군인 강봉천.
무학(無學)의 촌부(村父)가 책을 펴낼 수 밖에 없었던 절실한 사연,
질병으로부터 살기 위한 몸부림,
사랑이 넘치는 가족애, 위트와 농담을 즐기시는 그 분의 생전 모습,
 
이 모두를 한 번에 담아낸 그 무엇이 없을까?
갈망하던 저는 그만 깊은 시름에 빠져 버렸지요. 차일 피일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결국 스승님의 타계소식을 접하게 되자 이 사진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 그림을 휴대폰 사진으로 보는 순간, '바로 이 그림이야!' 라는 직감이 스쳐갔습니다.

결국 스승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이 다하고 영혼이 이승을 하직하는 장례식 순간에 제가 품어왔던 이 간절한 고민을 풀어주신 격이 된 셈이지요. 이제 이 그림은 제자단에 의해 49재 영정으로 사용되고 흡선치유닷컴의 공식 로고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오늘의 주인공이신 김창덕 화백님과의 대화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김화백님 안녕하십니까? '흡선치유닷컴' 의 전화 취재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네~, 지금 여수에서 급하게 답변 드리게 됨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여수 엑스포에서 제가 그림과 관련되는 일을 좀 하고 있습니다. 화가는 작품활동에 전념해야 하는데...목구멍이 포도청이라...좌우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 어쩌지요? 그림은 자신 있는데 이런 일에는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합니다.


이 인물화를 김화백께서 그리신 것이 맞지요? 그게 언제쯤 이었으며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예, 분명 제가 그렸습니다. 제작은 2007년 1월부터 3월까지 약 3개월간 제작 하였습니다.  그러니까...양력설에 가족 모두 모인가운데 너무나 평온하신 장인어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림을 위하여 항상 카메라를 지니고 다닐 때여서 바로 사진으로 그 모습을 담고 나중에 작품화하게 되었습니다. 훗날 영정으로도 사용할 목적으로 미리 제작해 둘 의도였지요.


이 인물화는 강봉천 옹의 실제 모습, 생전의 실제 얼굴이나 사진모습등 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어떤 특별한 감각이나 느낌이 가미된 것인가요?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평소에 가족이 모인 장소에서는 근엄함보다는 웃으시는 모습을 많이 뵙니다. 감각이나 느낌이라...사실 저는 인물을 주로 그리는 작가는 아닙니다. 제가 생각한 구상을 기반으로 사물을 재구성하는 그림을 주로 그립니다. 즉, 즉석에서 그리는 초상화와는 작품 구성 기반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특히 이 인물화는 누구나가 뵙는 표면적인 시각, 즉 외면적 모습보다는 그 분의 내면적인 느낌을 중요시했습니다.

서양화가 중에 모딜니아니 같은 경우에 영혼을 알지 못하면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니어도 오랜 세월 동안 장인어른을 대해왔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 느낌, 그 캐릭터를 잡아 진솔하게 표출시켜 보았던 것입니다.


혹시 장인어른에 대한 또다른 작품구상이나 계획을 하시고 있는 것은 있으신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아직은 없습니다.
특히 장모님의 생각으로는 너무도 생생한 장인어른의 모습을 대하시기가 자꾸 마음이 무겁다 하시니, 사실 서울 국립현충원 영정으로도 사용 못하게 된 그림이다 보니 당분간은 더 이상 어른에 대한 그림은 그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김화백님의 간략한 약력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게 하실말씀이 있으시면 해 주십시오.

이렇게 저에게 관심 가져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리고 아버님에 대한 여러 제자분들의 지극한 마음도 그렇고...정말 고맙습니다. 멀리 떨어저 연락받고 급하게 답변하게 되어 거듭 성의 없는 답변 같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김창덕 金昌德 화백의 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전 및 초대전:

산성갤러리 초대전
단원전시관 개인전
안산향토사박물관 개인전
연홍미술관 초대전
수원 Bear Mountain Gallery 초대전


☉단체전:

2000년~2003년 New York Art Fair
2005 자연과 인간의 화합 공간전
2008년~2011년 안산사생회
2008년~2010년 환경미술회화제
2007년~2010년 3아뜰리에전



2011년 미술로 보는 인천이야기
그 외 그룹전 및 단체전 다수

 

☉현재:

대한민국 환경미술협회 부회장
인천전업미술협회 부지회장
소사벌 미술대전 운영위원
안산 사생회 운영위원
코리아아트페스타 운영위원
한국 국제 미술교류협회 심사위원

 

                                                                               연락처: 010-3722-7823,
                                                                                           031)402-9669

                                                                         E-mail : domoart@hanmail.net


기사입력: 2012/05/29 [17:23]  최종편집: ⓒ 흡선치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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